HOME 로그인회원가입 최근게시물 사이트맵  
ID저장
회원가입ID/비밀번호찾기
교회비젼소개
동경만나비젼
선교사소개
예배안내
주일말씀
주일말씀
    >  주일말씀
 
작성일 : 13-08-04 09:25
2013년 08월04일 서른한번째주일 [산상수훈-1-]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305   추천 : 0  
2013년 8월04일 주일예배-한국어
본문 :『요한복음 16:33』
제목 : 산상수훈①(山の上の教え①)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오늘부터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특히,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 불리우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이 가르침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긴 내용으로, 예수님께서 어느 산에 올라앉으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이 산위에서 말씀하신 이 메시지는 복음서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말씀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덟가지 복(八福)을 시작으로, 땅의 소금, 세상의 빛(地の塩、世の光)이 되라는 말씀,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뺨도 대라(右の頬を打たれれば、左も向けなさい),
너는 구제할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施しをするときは,右の手のすることを左の手に知らせてはならない),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人を裁くな),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문(主の祈り),
네 보물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あなたの富のあるところに,あなたの心もあるの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何を食べようか何を飮もうか何を着ようかと思い惱むな),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何よりもまず,神の國と神の義を求めなさ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求めなさい.探しなさい.たたきなさ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人にしてもらいたいと思うことは何でも,あなたがたも人にしなさ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狹い門から入りなさい).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主よ,主よ』と言う者が皆,天の國に入るわけではない).

이 모든 말씀들은 너무나 유명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들어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이 산위에서 가르치신 이 교훈들은 반드시 마음에 새기어 지켜야 하는 가르침입니다. 오늘부터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의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함께 나누며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첫 부분인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첫 번째 가르침에 대하여 나누겠습니다. 이 말씀은 팔복(八福)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덟 가지 복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가난한 자]란 부자나 권력가들의 경제적 수탈과 사회적 억압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음이 겸손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1:1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오실 것이라고 함으로써 가난한 자의 특성이 단순한 물질적으로 가난한 차원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단지 용기가 없다거나 물질적으로 궁핍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인 가난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백하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십시오. 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죄에 대하여 탄식하는 아픔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심령
이 가난한 자가 자신의 심령이 가난한다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진실로 애통하는 자는 자신의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철저히 '애통하는 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애통은 영적인 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불의에 대한 애통이며, 사람들이 자랑하던 도덕성과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 대한 애통이며,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찾고 끝내 발견하기 위한 애통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경건한 생활을 유지하던 자들은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난과 수치가 외세의 압제 이전에 그들 백성들의 개인적인 죄와 민족적인 공동의 죄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고 그 때문에 수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회개의 눈물을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중보기도입니다.

우리 개인의 문제로 고통받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문제, 우리가 소속한 국가와 민족의 문제, 이 민족이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죄악과 우리의 교회들이 외식적이고 타락하는 교회의 문제들이 우리의 애통하며 기도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교회가 타락하고, 사회가 부패하고, 국가가 망해가고 있는데 우리들만 형통한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와 사회와 국가의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존재의 이유이며, 우리들의 기도로 이 땅이 하나님께 멸망을 유보(留保)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하다고 하는' 말은 한 인간이 역경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를 끝까지 보살피실 것이라고 굳게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 신약의 성도들도 메시야 왕국의 절정이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온유'란 외형적인 폭력이나 잔인함의 반대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그 고통을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자세를 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정복자들은 강한 힘과 권력으로 잠깐동안 이 땅을 정복했었지만 예수님은 온유하심으로 세상만물과 천국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진정한 뜻은 세상에서는 강하고 공격적인 자, 질서를 무시하는 난폭자가 땅을 차지하게 되지만 천국이라는 땅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온유한 자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왜냐하면 온유한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해있기 때문이며,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이 모두 그들의 소유가 되고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누가복음에는 단순히 '주린 자'로 묘사되어 있으나, 마태복음에서는 그  주림의 목적을 '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주림과 목마름은 이 땅위에 사는 모든 인생이  겪는 육적인 기갈(starvation)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심각한 영적 기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굶주림과 목마름은 영으로 거듭난 자들이 체험하는 새 생명의 영적욕구입니다.
'의'라는 말은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의로움인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적 정의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세상적으로는 자신이 의로워져서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행할 뿐 아니라 정의가 이루어질 것을 갈망하는 자이며, 종말론적으로는 굶주림이나 목마름 같이 이 땅에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할 세상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승리와 의의 본향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의에 주린 자들이 배부를 것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우리들 성도의 목자가 되시어 영생의 생명수와 하늘 양식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진정 의를 구하는 곳에는 영혼의 평안함이 있으며, 그 완벽한 영혼의 만족이 바로 우리 신앙의 대가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이란 말은 '자비'란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감정이나 성품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구체적인 믿음의 행위를 말합니다.

주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하며, 신약에서는 언약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들은 바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과 고통을 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를 동정한다는 의미를 포괄합니다. 그리고 시련을 당한 자들의 상황에 깊이 동참하여 그들로 하여금 부담없이 도움을 청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까? 그 대상은 바로 이 죄악된 세상이며, 성도는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실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성도에게 이 세상의 회복자로서의 능력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이 죄악된 세상을 긍휼히 여기고 세상의 참된 회복을 위해 실천할 때,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가 내려옵니다. 즉 긍휼에 대한 보상은 타인이 베푸는 긍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긍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긍휼함을 받은 성도가 작은 사람,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한사람에게 베푸는 한 잔의 물에서부터, 긍휼을 실천하며, 그 실천으로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하심을 받는 축복된 성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눈덩이가 구르면서 더 큰 눈덩이가 되듯이 긍휼의 풍성함에 성도가 살게 된다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축복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최종적인 보상은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위의 원천인 마음을 탐욕과 두 마음에서 해방시키고 정결케 하는 근본적이고 내적인 청결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인해 죄사함을 받고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두 마음'을 품는  자가 아니며,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 그리고 참 소망으로 성도의 교제를 돈독하게 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에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커다란 영적 축복인 것입니다. 지금은 신앙의  눈으로 보게 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화평을 만들어 가는 자'를 의미합니다. 화평이란 말은 샬롬과 비슷한 말입니다. 이 용어는 개인의 안녕이나 국가간의 평화를 의미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회복으로 인한 궁극적인 평화를 의미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화평의 실현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대속(代贖)사역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평화의 왕의 은혜로 구원얻은 성도들은 인간들 사이에서 예수께서 실현하셨던 평화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것은 단순히 분쟁 등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화평케하는 진정한 본보기를 하나님이 대가를 치르면서 이룩하신 화평에서 찾아야 합니다. 어떤 분쟁과 다툼에서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당연히 희생을 치루어야 합니다.

피스차일드(Peace child)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부족과 부족이 전쟁을 했습니다. 계속되는 전쟁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가족을 잃었고, 고통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두 부족은 평화를 제안했습니다. 그 제안의 댓가로 서로의 족장의 아들을 인질로 요청했습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인질이 된 아이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부족의 평화를 위한 인질이 되어 상대방 부족에게 잡혀가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피스차일드라는 역할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이 '아들'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온유하고 심령이 가난하며 의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길 줄 알고 특별히 화평케 하는 일을 위하여 준비가 되어 있고 그로써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을  반영해 주고 있는 천국의 상속자(inheritor)들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브로더스는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일보다 더 하나님을 닮은 일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이 구절은 팔복의 마지막 축복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란 말씀은 물론 까닭없이 고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기실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고통당하는 것, 우상에게 절하거나 불의와  타협하기를  거부한 일로 고통당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확장을 위해 진력하다가  고초당하는 것,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명예가 실추되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통제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지의 흐름을 화평케 하는 일에서 핍박으로 넘긴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증오와 편견을 기뻐하여서 화평케 하는 자가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거나 긍휼히 여기는 것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표시인 것처럼 반대를 받는 것도 예수의 제자가 되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받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옛날에 어느 교회에서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너무나 행복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은 믿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간다고 자신을 때리고, 욕을 했습니다. 남편을 전도하고 싶은 이 부인은 새벽기도에 올 때마다 남편의 신발을 품에 안고 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신발의 주인인 제 남편도 이 예배당에 와서 함께 예배드리게 해주세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결국 그 남편도 부인과 함께 그 교회에 나오게 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핍박받는 자들이 받는 보상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받는 복과 같은 것입니.  즉 천국이 저희 것이다. 박해의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의에 굳게 섰으므로 그들의 큰 복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것입니다. 즉 왕이신 메시야의 나라에서 얻어지는 모든 은혜와 은사와 영광은 그들의 것입니다. 세상이 그들에게서 무엇을 빼앗든지 그것은 그들로부터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이 하늘나라의 소유에 의해서 보충되고도 남습니다. 이로써 천국의 소유로 시작하고 천국의 소유로 팔복의 설교는 끝납니다.

처음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집,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절대로 먹지 말라고 명령받은 선악과를 따먹고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죄의 결과로 영원히 죽어야 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구속의 비밀작전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유일한 인간 두 사람 아담과 하와를 불순종의 범죄자로 만들면,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창세기2:16-17절 말씀처럼,“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대로 인간을 모두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반드시 죄의 값을 치르고 죽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이며, 변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최초의 인간이자, 모든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은 한번에 함정에 빠뜨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놓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멸망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인간을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최후의 비밀한 계획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비밀한 전략은 사단이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계획입니다. 이 구속계획은, 아무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기위하여 거룩한 나라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시어 인간의 죄의 대가로 죽음을 대신 당하시고, 죄의 값을 없애주시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어야 할 죄를 범한 모든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믿고 회개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구원계획입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인간구원 프로젝트는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려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일시적으로 이 세상에 임하였으나, 범죄한 사람들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단의 계략에 함께 동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나라로 올라가시며, 다시 오실 때는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는 평화의 나라, 그 나라로 우리를 함께 데려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소망이며, 비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들 모두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천국구원과 함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지옥의 심판이 있지만, 동시에 두 가지를 모두 유보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이 모두 회개하기까지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우리는 오늘도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천년전 창조자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직접 내려오심으로 새로운 약속의 시대를 시작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다고 하는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지키는 성도의 새로운 삶의 규범이 되게 하시고자 산상수훈을 주신 것입니다. 이 산상수훈은 천국시민의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산상수훈의 법은 우리에게 마땅한 삶의 원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산상수훈에서 가르쳐 주신 법을 기준으로 우리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천국시민의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 법을 완전히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이 법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정직하게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산상수훈을 다 지켜서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이를 결코 다 지킬 수가 없으며 다만 당신 안에서 이를 성실하게 지키고자 노력하게 하여, 오직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하고자 산상수훈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을 배울 때, 그것을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믿고 따르고자 애쓰는 사람에게는 아무 값없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오늘 우리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중보기도임을 기억하시고, 이 한주간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거룩한 백성, 구원받은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Address : 〒124-0005) 東京都葛飾区宝町1-3-15
Copyright ⓒ 2008 동경만나교회. All rights reserved. E-mail. jmcc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