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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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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2-22 17:54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13,544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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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9일 주일예배 본문 : 『히브리서 11:1-3절』
제목 : 예수를 믿는 사람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信仰とは,望んでいる事柄を確信し,見えない事實を確認することです.昔の人たちは,この信仰のゆえに神に認められました.信仰によって,わたしたちは,この世界が神の言葉によって創造され,從って見えるものは,目に見えているものからできたのではないことが分かるのです.)
첫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믿음을 고백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5-17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イエスが言われた.「それでは,あなたがたはわたしを何者だと言うのか.」 シモン·ペトロが,「あなたはメシア,生ける神の子です」と答えた.すると,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シモン·バルヨナ,あなたは幸いだ.あなたにこのことを現したのは,人間ではなく,わたしの天の父なの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도베드로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은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고백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백은 중요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마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믿는다면 사람들앞에서 그리고 자기자신에게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앞에서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에 감동하셨습니다. 말하자면 100점짜리 대답을 한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고백은 하나님아버지가 주신 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으로 인하여 손해를 볼까 두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으로 사람들이 무시할까 두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할 때, 이제부터 죄를 짓지 못할까봐, 사람들이 자신을 경건한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할까 두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곳도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을 고백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우리를 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떤 영적인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도해주기를 부탁할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이 잘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1년에 한번 또는 몇 번 찾아가는 그들의 신은 영적인 문제에 부닥쳤을때는 능력이 없는 신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믿음이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자신이 정말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는지조차 그 자신이 의문을 가질정도로 믿음이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도 매주일 나가지도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달에 한번은 기본으로 결석해 주고, 십일조헌금은 1년에 한번도 드린 적이 없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 자신도 자기가 왜 교회를 나가는지 잘 모를정도였습니다.
그런 어느 날, 믿지 않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함께 점을 치러 가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잠깐, 망설였지만, 곧 함께 가자고 답했고, 약속한 날, 점을 아주 잘본다는 점집에 친구와 함께 들어섰습니다. 순간, 안에서 큰소리로 화가 난 점쟁이가 소리를 쳤습니다. 누가 예수쟁이가 점집에 와서 남의 영업방해를 하는거야? 예수믿는 예수쟁이는 어서 썩 나가시오!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사람은 깜짝 놀랐지만, 설마 자신에게 하는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유명한 점쟁이가 맨발로 뛰어나와 이 사람에게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 예수쟁이가 점보는 집에 왜 오는거야? 영업방해하지 말구.어서 당신 예수한테나 가봐. 에이 오늘 점 못보겠네. 얘야 소금뿌려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점집을 나온 그 사람은 그제서야 자기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점을 보기위해 나왔던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교회로 갔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도 혹시, 이런 생각하는 분 있으십니까?
나는 믿음이 없어, 나는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어. 나는 하나님을 보기전에는 믿지 못하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으면, 유명한 점집에 한번 가보십시오.
가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지 말고, 점을 봐 달라고 해 보십시오.
여러분을 손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진짜 점쟁이는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그 사람이 점을 치는 점쟁이라면, 그는 여러분의 점을 제대로 볼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점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의 호적에는 하나님이 아버지로, 예수님이 구원자로, 성령님이 보호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영혼이 예수님을 여러분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1-2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兄弟たち,万一だれかが不注意にも何かの罪に陷ったなら,“靈"に導かれて生きているあなたがたは,そういう人を柔和な心で正しい道に立ち歸らせなさい.あなた自身も誘惑されないように,自分に 氣をつけなさい.互いに重荷を擔いなさい.そのようにしてこそ,キリストの律法を全うすることになるのです.)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기를 밥 먹듯 하던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탄은 바로 이 비판하는 습성 속에 공격의 화살을 쏘아대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손상시킵니다.
사람들은 남을 비판할 때마다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비판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 아예 작심하고 사람들에게서 비판거리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평소 비판을 잘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왜 그처럼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냐고 힐문하면 그는 자신의 성품이 너무나 솔직하기 때문에 그저 솔직한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거나 도와주는 삶과는 무관한 채 사람들과의 소외감 속에서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되겠지요.
어느 그리스도인은 비판을 피하려는 그의 의지와는 달리 그의 마음은 항상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말씀을 읽던중 로마서14장10절의 말씀 앞에서 그의 심장이 멎었다고 고백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それなのに,なぜあなたは,自分の兄弟を裁くのですか.また,なぜ兄弟を侮るのですか.わたしたちは皆,神の裁きの座の前に立つのです.)그 후로부터 그는 비판적인 생각이 바로 사단의 공격임을 깨닫고 말씀으로 대적하는 삶을 살면서 그 굳어진 습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족 된 우리가 서로 비판하기보다는 사랑하고 보듬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은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둘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 말씀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愛は忍耐强い.愛は情け深い.ねたまない.愛は自慢せず,高ぶらない.禮を失せず,自分の 利益を求めず,いらだたず,恨みを抱かない.不義を喜ばず,/ 眞實を喜ぶ.すべてを忍び,すべてを信じ,すべてを望み,すべてに耐える.)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성서라고 불리웁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오래참는 것, 온유한 것, 시기하지 않는 것, 자랑하지 않는 것, 교만하지 않은 것,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 자기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 성내지 않는 것,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10가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 모든 것을 참는 것, 모든 것을 믿는 것, 모든 것을 바라는 것,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복음과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는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은 소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은 이겨내는 것, 즉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안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의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예의가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 섬기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교만하거나 거만할 수 있습니까? 예의없이 무례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특히, 가장 비난받는 것은 말로 인한 실수들, 말의 무례함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질서를 깨뜨리고 무질서한 것을 싫어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4:33절은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40절에서는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말투는 말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말투는 말하는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은 안 그런줄 알지만, 말투가 아주 공격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
마음은 친절하지만, 말투가 친절하게 들리지 않으면 친절한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은 겸손하지만, 말투가 교만하게 들린다면 그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말투가 무례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아내와 말투 때문에 트러블이 일어납니다.
제 말투가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실 솔직하게 생각해보면, 내 말투속에서 불친절하고 무례한 마음이 표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성도들님 가운데도 말투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런식으로 목사에게 말할수 있을까? 깜짝깜짝 놀랍니다. 마음은 안그렇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붎쾌한 마음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환경을 지배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환경을 지배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위험한 상황이 닥쳐와도 그들은 믿음으로 그 환경을 바꾸었고, 불행을 축복으로 변화시킨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 7-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아멘.)
(信仰によって,ノアはまだ見ていない事柄について神のお告げを受けたとき,恐れかしこみながら,自分の家族を救うために箱舟を造り,その信仰によって世界を罪に定め,また信仰に基づく義を受け繼ぐ 者となりました.
信仰によって,アブラハムは,自分が財産として受け繼ぐことになる土地に出て行くように召し出されると,これに服從し,行き先も知らずに出發したのです.信仰によって,アブラハムは他國に宿るようにして約束の地に住み,同じ約束されたものを共に受け繼ぐ者であるイサク,ヤコブと一緖に幕屋に住みました.アブラハムは神が設計者であり建設者である堅固な土台を持つ都を待望していたからです.
信仰によって,不妊の女サラ自身も,年齡が盛りを過ぎていたのに子をもうける力を得ました.約束をなさった方は眞實な方であると,信じていたからです.)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노아, 아브라함, 사라는 모든 믿음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불행을 축복으로 바꾼 사람들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32-38절 말씀을 이어서 보겠습니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아멘.)
(これ以上,何を話そう.もしギデオン,バラク,サムソン,エフタ,ダビデ,サムエル,また預言者たちのことを語るなら,時間が足りないでしょう.信仰によって,この人たちは國々を征服し,正義を 行い,約束されたものを手に入れ,獅子の口をふさぎ,燃え盛る火を消し,劍の刃を逃れ,弱かったのに强い者とされ,戰いの勇者となり,敵軍を敗走させました.女たちは,死んだ身內を生き返らせてもらいました.他の人たちは,更にまさったよみがえりに達するために,釋放を拒み,拷問にかけられました.また,他の人たちはあざけられ,鞭打たれ,鎖につながれ,投獄されるという目に遭いました.彼らは石で打ち殺され,のこぎりで引かれ,劍で切り殺され,羊の皮や山羊の皮を着て放浪し,暮らしに事欠き,苦しめられ,虐待され,荒れ野,山,岩穴,地の割れ目をさまよい步きました.世は 彼らにふさわしくなかったのです.)
이런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을 세상이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감당하지 못한다. 고 했습니다.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있는 여러분가운데 혹시, 인간적인 능력으로 풀 수 없는 문제, 해결할 수 없는 환경의 문제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세상이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지금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환경의 문제들로부터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믿는 믿음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0장 38-39절 말씀으로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아멘.
(わたしの正しい者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もしひるむようなことがあれば,/その者はわたしの心に適わない.」しかし,わたしたちは,ひるんで滅びる者ではなく,信仰によって命を確保する者です.)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타협도 할수 없고, 양보도 할수 없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다른 모든 것을 양보해도 믿음은 양보하지 않아야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사람,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 동경만나교회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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